음대생 라운지
서울예고
circle 슈트라인 2년, 11개월전
불광동 근처 서울 변두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예고에 입학하니 학생의 3/4 정도가 강남 출신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이 예원학교를 졸업했다. 예원학교 출신들은 이미 서로 친했고, 우리 같은 비 예원 출신의 신입생들은 문화적 괴리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예원 출신이 아닌 학생은 “타학교 출신”으로 불렸다. 1년이 지나고 학교에 적응한 후 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고 3이 되었을 때는 친구들이 나도 예원 출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적응을 잘 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입학하고 바로 한자 시험을 봤다. 겨울방학동안 열심히 한자를 외운 나는 쉽게 시험에 통과했는데 한자 시험에 만점을 받은 사람은 우리 반에 나 혼자였다. 내 짝은 예원 졸업생이고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 사는 피아노과 학생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에게 한 번도 말을 시킨 적이 없었다. 얼마나 사람을 무시하던지 기분이 상했지만 따질 수도 없었다. 나중에 그 친구는 대학 졸업 후 또다른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서야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친한 척을 해서 “여우 같은 “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내가 참 이상하게 생각한 점은 학교에서 “타학교” 학생에 대해 이렇다 하게 신경을 쓰고 배려해주는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중 한 분은 “사실 예원 학교 졸업생들이 타학교 출신을 굳이 안 껴주는 것도 아닌데 타학교 출신들이 괜히 그렇게 느낀다”라고 수업 시간에 말씀하셨다. 차라리 “타학교 출신들은 아직 학교나 친구들이 많이 낯설테니 예원 학교 졸업생들이 많이 알려주고 같이 잘 지내도록 해라” 하고 말씀해주시면 좋았을 텐데..그 선생님은 타학교 출신들이 괜히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예고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나마 집이 강남이고 초등학교를 강남에서 졸업한 경우, 예원을 나오지 않아도 초등학교 동창들이 있어 적응이 좀 쉬운 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는 이대부속을 나오고 중학교는 은평구에 있는 공립 학교를 나왔으니 음악과에 동창이 아무도 없었다. 피아노로 경쟁을 하는 것도 영 적응하기 힘들었다. 피아노는 어려서부터 늘 치던 나의 장난감이었다. 학교나 성당에서 반주를 도맡아 했지만 피아노 성적 때문에 괴로워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85-93점 정도의 성적에 7-80명이 순위 다툼을 하니 그야말로 소수점으로 등수가 나뉘었다. 게다가 1학년 때 나의 실기 선생님은 학생 5-6명을 모두 불러 하루종일 남의 렛슨까지 보게 하는 그룹 렛슨을 했다. 나는 그룹 렛슨이 지루하고 정신이 없었다. 예고 3년간 피아노 실기 성적이 좋지 않아 나는 스스로 “피아노를 못 치나보다. 음악성이 부족한가보다”하고 내탓을 하며 지냈다. 그 때 누군가 “아니야, 너는 성장하고 있어.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네 자신과 경쟁해봐”라고 이야기 해주었으면 위로가 되었을텐데.. 남편은 부산 과학고를 나왔다. 과학고 생들은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하다가 고등학교에서 평생 받아보지 못한 성적을 받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때 선생님께서 “네가 60등을 한다고 좌절하지 마라. 너는 전국에서 60등 정도 하는 셈이다. 과학자가 되어 나라에 보탬이 되거라”하고 응원해주셨다고 한다. 서울 예고 생들도 위와 같은 지지를 받고 공부했으면 좀 덜 힘들었을텐데. 예술은 즐거움과 창의력에서 비롯되는데 과도한 경쟁 속에서 재능을 꽃피우긴 쉽지 않다. 그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예술가가 되도록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수나 세계적인 연주자만 꿈꾸다 유학 후 돌아와서 지방대 강사를 전전하며 힘들어하는 예고 졸업생이 얼마나 많은가. 어렸을때부터 갈고 닦은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이웃에게 나눌까 고민하는 예술가가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 서울예고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예고는 자유롭고 재미있는 교풍을 갖고 있다. 나는 그 곳에서 훌륭한 스승과 친구를 만났고,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위에 적은 몇 가지 사항만 개선된다면 더 좋은 학교가 될 것 같다. 아직도 육교를 건너 친구들과 학교에 가던 그 시절이 그립다. 계곡을 산책하고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그 시간들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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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욱 2021년 4월 8일 12:05 오전

부잣집 자제들이 많이 다닌다는 서울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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