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미술과 다르다.
미술은 창작자 자신이 아무런 매개 없이 직접 세상에 내놓고 작품의 우수성은 그 자체로 세상의 평가대상이 된다.
하지만 음악은 창작자와는 아무 상관없는 제3자인 연주가라는 매개를 통해 세상에 보여진다.
따라서 연주가의 해석력과 관점에 따라서 같은 작품이라도 질이 달라진다는 어려움이 있다.
연주가는 소리를 내는데에 어떠한 단계와 배경이 있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예컨데 그 곡은 어느시대, 누구의 소리이며 풍기는 분위기는 어떤지, 그것은 또 얼마나 빨리 연주되어야 하는지, 어떤 크기로 연주되어야 하는지, 또 빠르기에 따른 테크닉의 수준이 그 음악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의 여부 등등등.
같은 곡이라 하더라도 테크닉의 수준과 다이내믹, 그리고 악기의 질 및 해석능력에 따라 그 울림과 색채는 큰 차이가 난다.
보통 하나의 악곡을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해석에 있어서의 역사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흐시대의 악기는 이미 우리가 다루는 피아노와는 사뭇 다르며, 모짜르트가 강조하던 불협화음은 이제 우리에게는 일반적인 화음이 되어버려서 더이상 그가 의도한 클라이맥스의 효과가 나지않는다...등등의.)
해석을 주관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으로 할 것인가.
한정된 기보법 안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가의 의도에 접근할 수 있는것일까.
양식에 관해서 연구하는 방법은 어떻게 할까. 등등.
또 악기의 특징을 이해함으로서 해석에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프시코드는 셈여림의 변화가 별로 없지만 클라비코드나 피아노포르테는 세밀한 단계가 있어서 다이내믹의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에 따라서 해석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으며 악기에 따라 템포의 개념도 약간은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다.
18세기의이탈리아 음악은 주로 하프시코드용으로 작곡된 것이므로 한 예로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는 피아노로 연주할 경우에
하프시코드의 연주양식을 염두에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19세기 이전의 음악은 악보나 전기나 기록을 통해 추리할 뿐, 실제 녹음은 들어볼 수 없기 때문에
연주양식, 음악형식, 꾸밈음과 템포의 해석, 셈여림의 정도, 작품의 성립동기, 당시 사회의 여건 , 그리고 기록으로는 한계가 있는
악곡의 분위기, 작자의 의도 등을 파악해야 하는 것 등이 음악해석에서의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박영수 저 '피아노 주법 연구 The minute Research of Piano Playing - 교수법의 체계적인 접근 - 을
참고하였습니다.
좀 쉽게 얘기해볼까요?
어떠한 곡에서 스타카토를 연주하려면 일단 그 음악의 분위기를 알아야 합니다.
슬픈고 애절한 곡에서의 스타카토는 당연히 무거운 스타카토가 될 것이고, 기쁘고 발랄한 음악에서의 스타카토는 가볍게 연주하겠지요.
그것이 기본입니다. 뭘 좀 알고 치자는 거지요.
슬프거나 기쁘거나 그저 스타카토는 짧게만 친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일단 곡이 작곡되었을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상, 그리고 작곡자의 의도를 알아야겠지요. 혹은 작곡자의 심리상태 등등.
그리고 거기에 따라서 연주양식이며 형식, 템포와 꾸밈음, 셈여림 등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결정되겠지요.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말이지요.
음악해석의 마지막 목표는 '인간감정의 음악적 표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품에 표현된 감정을 인지하고 그 감정에 적절히 따르며 상세한 연구로 거기에 알맞는 음악을 창출해내는 해석이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수용된다고 독일의 작곡가 하이니헨은 말합니다.
C.P.E. Bach는 '해석이란, 노래를 부르건 악기를 연주하건 간에 연주자가 진정한 만족과 감정에 따라 음악적으로 분명히 하는 능력'
이라고 했다지요. 연주를 듣고 만족이 크면 관중의 환호도 비례하여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듣는 사람들에게 후련한 만족감을
주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같은 연주결과를 위해서는 훌륭한 해석과 훌륭한 연주능력의 조화가 필수겠지요.
훌륭한 해석을 위해서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마시고
훌륭한 연주를 위해서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