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 논문, 연주법 등
머레이 페라이어
슈트라인
5년, 7개월전
M u r r a y P e r a h i a
1947년 4월 19일 뉴욕 출생
국적 : 미국
교수 : 자네트 아이엔(아브란 카시스의 조교), 칼 밤베르거(오케스트라 지휘)
연주경력
1967년 : 말보로 페스티벌에서 루돌프 제르킨·알렉산더 슈나이더·파블로 카잘스 등과 함께 연주
1968년 : 알렉산더 슈나이더의 지휘로 카네기 홀에 데뷔
1972년 : 리즈 국제 콩쿨 1위, 국제적인 경력이 시작됨
슈만의 피아노 독주곡들을 공부하기 이전에 나는 피아노가 들어간 그의 실내악 작품 전곡을 뉴욕에서 연주했다. 세 곡의 피아노 트리오, 두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리고 피아노 사중주와 오중주,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작품집, 오보에를 위한 세 개의 로망스, 비올라와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트리오 등을 모두 연주했다. 당시 함께 연주한 연주자들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산더 슈나이더, 첼리스트 레슬리 파나스, 과르네리 현악 사중주단 등이었다. 그렇게 슈만의 실내악 작품 전곡 연주를 하고 난 다음에야 나는 그의 피아노 독주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카니발’을 우선 시작했고, ‘크라이슬레리아나’ ‘환상소곡집’ ‘다비드동맹무곡’ ‘나비’ 등의 순으로 공부했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공부를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젊었을 때에 나는 이미 ‘크라이슬레리아나’와 ‘카니발’을 공부했었다. 그렇지만 자네트 아이엔은 진정으로 낭만적인 아이디어가 가득한 이 작품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했다.
내가 ‘카니발’을 공부할 때에 나는 슈만이 쓴 모든 글을 비롯해서 그의 동시대의 작가들, 예를 들어 아이헨도르프와 하이네 등의 글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 폴의 영어 번역판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아직 읽지 않은 모차르트에 관한 그의 글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렇지만 아이헨도르프의 ‘악당의 삶’은 영어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예비적인 독서를 통해서 나는 슈만의 작품 속에 몰두할 수가 있었다. 우선 나는 슈만이 표기해 놓은 메트로놈 기호와 주석 등에 흥미를 갖는 것으로 시작했고, 그것들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카니발’을 공부하면서 슈만이 표기해 놓은 메트로놈 표시가 종종 너무나 빠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느린 악장에서는 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슈만이 템포를 매우 정확하게 표기했다는 증거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슈만의 표기를 존중해야만 한다. ‘카니발’ 가운데 ‘고백’을 예로 들어보자.
이 곡의 템포는 ‘agitato’이므로 상대적으로 빨리 연주되어야 한다. ‘카니발’에서 이와 같은 문제는 아주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들은 슈만의 템포 표기가 곡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 느린 악장은 너무나 느리게 연주되고 있으며, 빠른 악장은 또한 너무 빠르게 연주되고 있다. 내 생각에 낭만주의 작품을 연주할 때 이러한 방식으로 하는 것은 나에게는 잘못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빠른 악장들은 조금 느리게 연주되어야만 한다.
슈만에 더 가까이
슈만의 작품에 친숙해지기 위해서 나는 화니 데이비스의 녹음들을 들었다. 그녀는 클라라 슈만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나는 특히 ‘다비드동맹춤곡’과 ‘a단조의 협주곡’을 주로 들었다. 그녀의 녹음들은 나에게 정말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화니 데이비스는 비록 특별한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명의 훌륭한 음악가였다. 매우 고전적인 그녀의 해석은 아마도 슈만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매우 흥미롭다. 나의 슈만에 대한 개념은 화니 데이비스의 것과 유사해져갔다.
오늘날 나는 가능한 한 텍스트를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내가 이러한 발전 단계를 거치고 난 다음에는 아마도 조금 더 많은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하나의 작품에 접근하는 가장 최상의 방법은 구조와 형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환상적인 낭만주의 이전의 슈만의 고유한 낭만성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자유·시간이 수반되어야지만 말이다.
슈만은 분명히 매우 뛰어난 교사였을 것이다.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그의 조언은 정말로 인상적인 것이다. 슈만에 따르면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연주하기 이전에 전체를 읽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따로가 아닌 양손으로 연주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나는 과거에는 슈만의 이러한 생각에 반대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의 교수는 늘 나에게 “우선 왼손을 연습하고 나서, 오른손을 연습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처음부터 화성적이며 대위적인 작품의 구조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반드시 한 작품의 화성과 특정 패시지가 표현하는 바, 그리고 그 패시지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서 멈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서 우리는 슈만이 어떠한 상황에서 클라라를 위해서 쓴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알아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순수한 음악적 측면이 절대적으로 첫번째가 되어야만 한다. 결국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표현의 방식에 대한 흥미를 갖기 이전에 매우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어떻게 소리를 만들 것인가
자네트 아이엔은 아르투르 슈나벨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슈나벨이 슈만을 연주했는지, 연주했을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 연주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피아노 작품의 변경에 대해서라면 나는 적어도 청교도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것은 작품·패시지·편곡이나 변경의 음악적인 흥미에 따라 다른 것이다. 루돌프 제르킨은 절대적으로 청교도적인 사람으로, 그는 정말로 악보에 적힌 그대로 연주했다. 나에게 그와 반대로 음향적인 결과가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나는 중음부를 두 손으로 나누어 연주함으로써 더욱 뚜렷하게 소리가 나도록 한다. 그것이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나에게는 소리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패시지들이 어떠한 미숙함이나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들 역시 음악의 전체를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일부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런 요소들을 변경한다면 음악의 전체적인 그림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각각의 작품마다 다르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서 비록 공부를 마쳤음에도 아직 청중 앞에서 한번도 연주하지 않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의 트릴을 나는 악보에 적힌 그대로 연주한다. 그러나 이 트릴을 양손의 옥타브로 연주하는 미라 헤스의 방식도 결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슈만의 환상곡의 두 번째 악장에서의 변경은 매우 위험하다. 차라리 이 악장에 담긴 감정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음을 틀리는 편이 낫다. 그러나 그 반대의 매우 훌륭한 반증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Op.101’의 마지막 악장에서는 베토벤 자신이 악보를 변경해서 연주했다. 베토벤은 16분음표의 진행을 왼손으로부터 오른손으로 나누어 연주를 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나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해 냈다. 루돌프 제르킨은 멘델스존이 손가락 번호를 지정해 놓은 하이든의 트리오 악보를 지니고 있었는데, 멘델스존은 이러한 방식으로 상당한 수의 작품들의 손가락 번호를 정해 놓았다. 그러니까 왼손으로 연주되어야하는 음들을 오른손으로도 나누어서 연주하도록 하는 방식인데, 그 놀라운 손가락 번호는 그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나는 손가락 번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왔다. 손가락 번호는 그 자체가 음악적인 아이디어와 연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음악이 몸을 통해서 표현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손가락 번호는 매우 중요하다.
요제프 시게티는 이런 분야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나는 한때 그의 몸 사용법에 완전히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법과 활을 쓰는 방법은 완전히 음악적인 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는 단 한번도 이 주제를 차갑게 대한 적이 없다. 그는 늘 지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나는 마찬가지로 슈나벨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 손가락 번호를 붙인 것에 큰 인상을 받았었다. 그의 운지는 분명히 중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열정적인 것이다. 음악적인 계획의 측면에서 그는 분명히 늘 무엇인가를 표현해 낸다. 이러한 장르의 세부적인 요소들은 나에게 무척이나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나는 늘 연습했던 운지로 연주를 하는 일에 매우 엄격하지만은 않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순간에도 내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손가락 번호를 바꾸는 일이 있다. 내가 하나의 운지를 선택할 때에는 음악적인 면으로부터 운지를 결정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음악적인 표현과 나의 손과 손가락의 조건에 맞는 편안한 운지 사이에서 적당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정리하자면 나는 분명히 손가락 번호를 극도로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코 성스러운 어떤 것은 아니다. 나의 동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들이 무대에서 평소에 연습했던 손가락 번호로 연주하지 않을 때, 그리고 암보에 불확실한 부분이 생길 때에 커다란 충격을 받곤 한다.
슈만과 쇼팽의 표현 차이
나는 페달을 매우 많이 사용한다. 특히 슈만보다는 쇼팽의 작품을 연주할 때 페달을 더욱 많이 사용한다. 페달과 그 지속에 대해서 쇼팽은 각각의 음을 통해서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페달은 내가 음악적인 표현을 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아마도 쇼팽이 우리가 현재 연주하는 것과 같은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다면 그는 지속페달(*그랜드 피아노의 첫번째 페달)을 사용하는 첫번째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어느 것이 그의 정확한 의도인지 알지 못한다. 만일 우리들이 1/2페달을 사용한다면 특정 패시지들은 더욱 투명해질 것이다. 이때 만들어지는 효과는 매우 아름답다. 나는 쇼팽의 ‘전주곡 Op.28’ 가운데 내림 B장조를 예로 들고 싶다.
이 곡을 작은 연주회장에서 연주할 때에는 큰 연주회장에서 연주할 때처럼 페달을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절대 단정적으로 되어서는 안된다. 반대로 모든 변경 가능성에 대해서 열린 상태로 있어야만 한다. 만일 상투적인 상황에 모든 것들을 고정시켜 놓게 되면 우리들은 더 이상 발전할 수도 없거니와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조차 없게 된다. 음악은 연주회 장소, 청중, 정신적인 상태 그리고 미처 인지할 수 없는 많은 요소들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다.
슈만과 쇼팽의 음악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나는 쇼팽이 슈만보다는 피아노 자체의 장점들을 더 사랑했다고 믿는다. 슈만의 피아노 작품들은 본질적으로 관현악적이다.그 안에는 모든 악기들이 모여 있다.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피아노 작곡법은 어설프고 불편하다.그와 반대로 쇼팽의 작곡법은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운지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나는 쇼팽의 ‘연습곡’과 ‘전주곡’을 공부하는 것에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슈만을 공부할 때는 그렇지 못하다. 그의 존재 방식은 다르다. 그의 음악은 더욱 어려우며, 독특하다. 물론 쇼팽의 곡들도 매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도 피아노라는 악기를 위해서 더 없이 자연스럽게 쓰였다. 그러나 슈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아마도 나의 이러한 감정을 다른 모든 피아니스트들과 공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슈만은 어떤 때는 손가락만을 위해서, 또 어떤 때는 팔을 위해서 작품을 쓴 것 같다. 하지만 쇼팽은 그 둘 모두를 하나로 합쳤다.쇼팽은 분명히 피아노를 예술적으로 연주하는 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쇼팽으로부터 그것들을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슈만의 작품 가운데 특정 패시지들은 좋은 피아니스트보다는 나쁜 피아니스트가 연주했을 때에 더 나았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크레이슬레리나’의 마지막 곡의 도입부의 오른 손을 예로 들어보겠다.
만일 이 곡을 리듬을 엄격하게 지켜서 연주하려고 하면 그 효과는 음악적으로 좋지 않게 된다. 내 생각에는 소프라노 성부의 8분음표의 선율들이 잘 들리도록 하는 것이 낫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화음의 두 음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어야만 한다. 슈만의 협주곡 1악장 전개부의 열정적인 패시지에서도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만일 오른손의 반주부에 해당하는 셋잇단음을 손가락이 닫힌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보다는 마치 화음을 가볍게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는 것처럼 연주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율이 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슈만의 작품에서는 음들이 쉽게 잘 흐르거나 진행되지 않는다.그의 음악은 마치 폭탄이 흩어져 있는 듯하다. 나는 슈만의 음악의 그러한 폭발적인 면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는 천상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지상적이다. 바로 이 점이 쇼팽의 음악과의 가장 커다란 차이이다.
바흐 평균율곡집
템포는 음악의 우아함이 표현될 수 있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 한도에서 정해져야만 한다. 19세기의 작곡가들이 연주자들은 오늘날과 같이 빠른 템포로 연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내 생각에 쇼팽도 호로비츠와 같은 템포로 연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화니 데이비스의 기교는 정말로 고귀한 것이어서 오늘날의 피아니스트들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다. 슈만은 “기교는 결코 작품이 요구하는 이상으로 연습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나는 왜 나에게 쇼팽이 슈만보다 쉬운지를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쇼팽을 연주할 때는 슈만을 연주할 때보다 읽어야 할 글들이 훨씬 적다. 쇼팽의 음악은 슈만의 음악처럼 문학적으로 깊이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 쇼팽의 음악은 모두가 순수하다. 쇼팽의 작품에서 모든 음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슈만의 경우에 개념과 감정이 그보다 앞서며 만일 모든 음을 전부 연주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커다란 중요성이나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쇼팽을 연주할 때에는 한 음도 빠트려서는 안된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의 첫번째 악장의 모든 음들은 모차르트나 바흐의 작품을 연주할 때처럼 모두 어느 한음도 뺄 수 없는 필요불가결하다. 만일 모차르트나 바흐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쇼팽을 잘 연주할 수 없다. 나는 연주회에서는 거의 연주하지 않지만 바흐를 매우 많이 연주해 왔다. 청중 앞에서는 바흐의 협주곡 d단조·E장조·f단조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 등을 연주했을 뿐이다. 이번 여름에 나는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공부했는데, 그리 큰 진척을 보지 못했다. 내년 여름에는 공부를 마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과연 연주회에서 연주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바흐의 작품들을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서 연주하기 때문이다. 나는 바흐의 평균율곡집을 가능한 한 많이 공부하고 있다.
카잘스는 바흐의 평균율곡집의 전주곡과 푸가를 연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떤 해에 나는 2주 동안 푸에르토 리코에 있는 그의 집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다.매일 아침 7시에 2층에 있는 피아노에서는 어김없이 바흐가 흘러나왔는데, 이것이 나를 무척이나 신경질 나게 했다. 나는 조금 더 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카잘스는 그의 아침기도를 했던 것이다. 그는 매일 두 곡의 전주곡과 푸가를 연주했는데, 매우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투명한 음색으로 연주했다. 그러나 그가 연주한 방식은 거의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그는 모든 평균율곡집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곡의 전주곡과 푸가를 연주한 뒤에 그는 첼로를 잡았고, 음계와 아르페지오를 연습했는데, 매일 서로 다른 조성의 음계와 아르페지오를 선택해서 연습했다. 지금도 그가 연주했던 A장조의 음계와 아르페지오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흐의 모음곡 한 곡을 모두 연주했다. 그는 그렇게 매일 아침 이른 시각에 아침 식사를 먹기 전까지 2시간 정도를 연습했다. 그리고서 그는 신문을 읽고 그의 자서전을 쓰는 일을 했다. 대개 오후에 그는 낮잠을 잤고, 그리고서는 시골의 소박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카잘스는 그들과 도미노 놀이를 즐겼다. 그는 당시에 사제나 도심의 노동자들 등 모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카잘스는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기교와 몸의 움직임에 대해
나는 코르토에 매료되었었고 카잘스에게 코르토에 대해서 묻곤 했다. 코르토가 슈만을 연주한 방식은 정말로 기가 막힌 것이었다. 나는 코르토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고 싶다. 그는 나의 이상이다. 카잘스도 코르토를 높이 평가했고, 그에 대해서 자주 얘기하곤 했다. 그러나 카잘스와 코르토는 미묘한 관계였다. 카잘스는 코르트와의 관계에서 종종 화를 내곤 했는데, 카잘스는 전쟁 동안 독일인들과 독일 문화에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잘스는 루돌프 제르킨과 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뿐만 아니라 헤럴드 바우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호르초프스키는 타고난 음악가였으며 나에게는 신과 같다.
나는 슈만의 ‘카니발’을 호로비츠 앞에서 연주한 적이 있는데, 잘하지는 못했었다. 호로비츠는 ‘카니발’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청중 앞에서 연주한 적은 없다. 호로비츠는 당시 ‘카니발’의 몇몇 곡들을 마치 느리게 연주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면서 매우 빠른 템포로 연주할 수 있었다. 템포는 빨랐지만 각각의 화음과 음들은 제 자리에 있었고, 그 덕분에 모든 음들을 명료하게 들을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마치 느리게 연주되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로 그의 연주는 환상적이었다. 호로비츠는 건반의 시인이다. 그의 섬세함과 연주의 시적인 면들은 정말로 놀라웠다.
나는 호로비츠 앞에서 바흐의 작품도 하나 연주했었다. 그는 칭찬을 해주었지만, 페달을 조금 더 사용하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에 대한 나의 깊은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레슨을 해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모스코프스키·클레멘티·체르니 등의 작품들을 조금 더 연주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말하자면 더 기교적인 작품들이었다. 호로비츠는 페달에 매우 큰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 기교란 귀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은 무엇보다도 연습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손가락 연습이며 다른 필요한 모든 연습을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호로비츠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우선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자세는 매우 창의적이며, 열정적으로 손가락 연습에 매달리면서 기교를 향상시키는 것보다도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몇몇 기교적인 연습을 하는데, 예를 들어 트릴을 연습할 때에 연주하지 않는 손가락들의 위치를 낮추면서 연습한다. 이 방법은 매우 유용하지만 지루하기도 하다. 음계를 연습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음계를 잘 연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메트로놈을 가장 빠르게 해 놓고 거기에 맞추어 음계를 연주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위해서도 많은 연습을 한다. 엄지손가락은 잘 사용하기 어려운 손가락이다. 코르토가 제시한 연습방법은 엄지손가락의 향상에 매우 좋다.
나는 쇼팽의 전주곡 가운데 E플랫 장조를 가능한 자주 연주하는데, 이 곡은 근육이나 등의 움직임에 매우 좋다.
나는 쇼팽을 연습할 때에 왼손을 따로 연습한다. 녹턴이나 전주곡을 연습할 때에 특히 그렇다. 오른손이 선율을 노래하는 패시지에서 나는 왼손을 더욱 많이 연습한다. 종종 왼손을 오른손보다도 더 많이 연습한다. 쇼팽의 소나타 b단조 1악장에서 왼손의 반주부는 정말로 어렵다.
왼손을 연습하기 위해서 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C장조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d단조를 연습하기도 한다. 왼손만으로 연주를 하면서 주요 선율이 잘 들리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바흐의 작품들을 이러한 관점에서 연습한다. 나는 바보 같은 연습곡들은 싫어한다. 내 친구인 앙드레 차이코프스키는 어떠한 규칙도 삶을 지루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로 옳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음악에 반하는 집착하는 방식으로 연습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종종 그런 순간을 지내야만 한다. 클리포드 커즌은 이러한 경우에 대해서 슈나벨이 했던 얘기를 들려주었었는데, 슈나벨은 그 자신이 여전히 해야만 하는 ‘요리의 노동’이 있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감자의 껍질을 잘 벗겨야만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발성과 감정의 희생이 있어선 안된다
나는 늘 가능한 한 기계적인 방법인 아닌 음악적인 방법으로 연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이유가 내가 바흐와 쇼팽을 공부하는 이유이다. 종종 나는 코르토가 제시한 연습법에 따라서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특히 슈만과 쇼팽의 작품을 연습할 때에 그러하다.
내가 집에서 차분하게 연습을 할 때에 나는 대개는 바흐로 시작한다. 그리고서 2~3분 정도 공부하기 위해 고른 작품들을 연주하기 위한 기교적인 연습을 한다. 우선은 작품 전체를 연주하지만, 나중에는 세부적으로 공부를 한다. 피아노 위에서뿐만 아니라 악보 위에서도 연습을 한다. 나는 작품을 몇 부분으로 나누면서 내 스스로 작품을 위한 연습곡을 작곡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악보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다른 상당수의 피아니스트들처럼 동시에 여러 가지 연습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나 이틀 동안은 나는 단 하나의 작품에만 몰두하며, 때로는 한 악장에만 몰두한다. 나는 양 손을 따로따로 연습하는데, 물론 우선은 양손으로 연습을 한 뒤에 양손을 나누어서 연습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부적인 연습에 들어가기 이전에 기쁨을 갖고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주회가 없을 때에는 나는 많은 음악을 듣는데, 무엇보다도 관현악 작품들과 오페라를 듣는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오페라에 데리고 갔다. 오페라는 나의 첫번째 사랑이면서 또한 여전히 가장 깊이 사랑하는 음악들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호로비츠는 바그너의 오페라들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는 바그너의 모든 오페라들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또한 호로비츠는 ‘벨칸토’에 관한 한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는 종종 위대한 이탈리아 성악가들의 앨범을 듣곤 했다.나 역시 호로비츠처럼 이태리 오페라와 성악가들의 앨범을 많이 듣는데, 이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내가 맨해튼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에 나는 몇 년 동안 오케스트라 지휘를 배웠는데, 이를 통해서 수많은 관현악 작품들을 배웠다.
실내악은 피아니스트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실내악은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를 하면서 연주의 서로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듣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항상 새롭게 작품을 연주하면서 매우 다채롭게 연주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발견하는 방식이다. 실내악을 통해서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눈다는 것은 타인과 음악을 동시에 재발견하는 환상적인 경험이다. 왜냐하면 실내악은 다른 사람들을 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위법적으로 완성할 줄을 알아야 하고, 선율이 다른 성부에서 나오면 그 선율이 잘 드러나도록 할 수 있어야한다.
실내악은 귀를 위해서도 매우 훌륭한 경험이다. 각자는 앙상블에 책임이 있다. 구조와 음악과 프레이즈의 구성에 대해서 파악해야만 한다. 인격의 형성, 귀의 훈련, 음악의 형식에 대한 지식, 이 세 가지 요소가 모일 때에 실내악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지휘자 없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일은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을 연습시키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늦은 시각까지 내 생각에 지켜야 하는 다이내믹과 필요한 프레이즈를 연습시켰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나와 함께 연주할 때에 그들은 반드시 그것을 들어야만 했다. 그 작업은 마치 대규모의 현악 사중주단처럼 실내악을 연주하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모차르트의 후기의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들도 그렇게 작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그것은 나의 앞으로의 과제에 속한다(*페라이어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자신이 지휘하면서 이미 오래전에 녹음했다). 아무튼 이러한 방식의 작업은 만일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있을 경우에 도달할 수 없는 교감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독주자도 더 많은 자유를 획득할 수가 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역시 집중도가 더욱 높아지고, 연주하면서 더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루빈스타인은 영감을 주지 않는 음악을 공부하거나 연주해서는 안된다고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울 수는 있되, 자발성과 감정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자발성과 감정은 정말로 놀라운 음악에 대한 사랑인데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나는 쇼팽을 각별히 좋아하며, 가능한 많이 쇼팽을 연주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중에 이러한 기회를 충분히 이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나는 말러의 음악에 충분히 빠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다. 내가 말러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시기에 몇몇의 교향곡을 제외한 그의 모든 작품들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고 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도록 강요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피아니스트들이 현대음악을 공부하지 않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상적인 것은 동시대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그 작품들에 친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 감정 앞에서 정직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예술가가 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발췌 및 번역·김동준(음악평론가)
좋아요 3
댓글수 1
라흐많이높음 2019년 4월 3일 2:25 오후
후아 겨우 다 봤네 내용 완전 굿인데요?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