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렉스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할 때부터 모두에게 숙제이며,
대부분의 전공생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짧은 음표로 이루어진 긴 패시지를 칠 때 릴렉스가 되지 않는다면
그 부분을 칠 때 손목이 위아래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거나
건반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들이 가장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건반의 위아래를 들락거리고 있는지 살펴보자.
짧은 음표의 긴 패시지는 고른 소리와 손목의 릴렉스가 함께 할때에 소위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내 팔을 서예붓이라고 상상해보자.
손목에서 팔꿈치까지는 붓대
손목에서 손가락 끝까지는 붓털이라 해보자.
선을 그리려면, 붓이 흔들리지 않고 고른 속도로 움직여야 반듯한 선이 그어진다.
선을 그리는 동안 붓을 눌렀다 들었다 한다거나 위아래로 마구 움직이면 반듯한 선은 그을 수 없다.
긴 패시지를 연주하는 동안 손목이 커다랗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스을쩍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음표마다, 혹은 특히 힘센 손가락(예를 들면 엄지같은)이 내려치면서 만드는 불규칙한 강세를 따라
위아래로 바삐 움직여서는 길고 아름다운 패시지를 완성할 수 없다.
작은 소리로 빠른 패시지를 연주할 때는 가느다란 선을 긋는다고 상상해보자.
당연히 건반에 닿는 손가락의 면적은 줄어들고 손끝의 움직임은 민첩해지며
손목은 자연스럽게 살짝 높아질 것이고
큰 소리의 힘차고 우렁찬 패시지라면 두껍고 힘있는 선을 그을때처럼
손끝에 힘을 더 많이 모으고 손목을 더 낮게 두게 될 것이다.
포지션을 이동하거나 도약을 할 때에도
스스로 팔을 힘껏 들어 '이 건반에서 저 건반으로' 라는 식으로 팔을 '이동' 시키지말고
다른 사람이 내 손목 아래 손가락을 넣어 슬쩍 받쳐들고 '옮겨주는' 것처럼 해보자.
(아니면 인형뽑기 기계의 집게처럼 내 손목을 슬쩍 '집어들고' 옮겨주는 것처럼)
제3자가 내 손의 자리를 옮겨주는 동안
손목 아래 받쳐진 다른사람의 손 위에 내 손목은 힘을 빼고 '척 걸쳐진' 상태일 것이며
인형뽑기 기계의 집게처럼 내 손목을 집어들었대도 역시 내 손목은 '축 늘어진' 상태일 것이다.
힘을 잔뜩 주고 박자에 맞춰 바삐 포지션을 이동하는 것과 다르게
힘을 빼고 포지션을 옮겨주면 이동하는 동안 걸리는 자연스러운 시차가 생겨 박자에 '여유' 가 생기게 된다.
분명 박자맞춰 치는데도 '바쁘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는 없지만 일단 느린 곡에서 자연스럽게 손목에 힘을 빼고
'발레하듯' 우아하게 포지션을 바꾸고 도약을 할 수 있다면
빠른 곡에서도 자연스럽게 손목에 힘을 뺄 수 있게 될 것이다.
건반 위에서 내 손목과 손을 붓 삼아 선을 그리고
발레리나가 우아하게 팔을 움직이듯 포지션을 바꾸고 도약할 수 있다면
막연하기만 했던 릴렉스가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연습을 하면서 서예가가 되어보기도 하고, 발레리나도 되어보고.
연습이 훨씬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