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 논문, 연주법 등
비참함 속에서 이루어진 베토벤의 위대한 작곡
circle 관리자 6년, 10개월전

 

 

베토벤의 일생은 고난 그 자체다. 소년 시절 베토벤은 가정의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알콜중독자인 그의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자랑하며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4살 때부터 피아노 앞에 앉혀 놓았으며, 바이올린을 켜도록 방 안에 가두어 놓기도 했다. 아버지의 이와 같은 강압이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금만 더 심했더라면 베토벤은 영원히 음악과 담을 쌓을 뻔한 그런 수준의 괴로움이었다.

아버지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는 가운데  어머니로부터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베토벤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머니는 나에게 참으로 좋은 어머니, 사랑하기에 충분한 사람, 가장 좋은 벗이었다! 아아!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고, 그 소리를 어머니가 들어주시던 때의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

라고 고백하였다. 이런 어머니가 베토벤이 열일곱 살 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베토벤의 삶이 얼마나 힘들어졌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베토벤은 졸지에 가장이 되었고,  집안을 이끌어갈 힘이 없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두 동생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했다. 베토벤은 우울증이 생겼으며, 몸도 허약해져서 장질환에 시달렸다.

스물다섯 살이 지날 무렵에는 귀까지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귀울림이 밤낮으로 베토벤을 괴롭혔다. 하지만 베토벤은 아무에게도 청각이 약해져 가고 있음을 알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피하다가, 끝내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사실 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데. 약 2년 전부터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패해 왔네. ‘나는 귀머거리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네. 만일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어떻게 해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내 직업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으니 이것은 무서운 노릇이 아닐 수 없네. 내 적들이 이 사실을 알면 도대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더구나 그들의 수는 적지 않으니 말이네. ……극장에 가서 배우들의 대사를 알아들으려면 오케스트라 석 바로 옆에 자리잡아야 하네. 조금만 떨어져도 악기나 음성의 높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일세. ……”

 

 

이런 상황 속에서 베토벤은 <플루타루크 영웅전>을 읽고 힘을 얻었으며 의지할 곳 없는 베토벤에게 유일한 친구는 자연이었다. 자연에서밖에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가난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청각 장애와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거기다가 고독과 외로움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까지 겹쳐지면서 베토벤의 하루하루는  자신의 말마따나 비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베토벤의 가난을 보다 못한 귀족들이 그가 오스트리아에 머물러만 준다면 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예술가는 모든 물질적 괴로움에서 해방되어야 자기 예술에 전념할 수 있으며, 그래야 비로소 예술의 영광, 숭고한 작품을 낳을 수 있다. 이에 서명자들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을 궁핍으로부터 보호하고 천재의 비약을 방해하는 비참한 장애를 제거하기로 결의하였다.”

하지만 이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베토벤은 “나는 걸식을 해야 할 지경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있는 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구두에 구멍이 뚫려서 외출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고 한다. 악보 출판사에는 빚이 쌓여 있기 때문에 작품을 출판해도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또한 받아야 할 연금을 받기 위해, 그의 조카의 보호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계속되는 소송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다. 번번이 괴로움을 맛보아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베토벤의 모든 작품은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불멸의 교향곡 1번부터 9번까지가 한결같이 이런 비참함 속에서 탄생하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교향곡 9번 ‘환희’야말로 베토벤의 모든 삶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고통과 불행에 시달리면서 베토벤은 환희의 노래를 갈망해왔다. 그리고 끝내 환희를 향해 뛰어올라 그것을 가슴에 껴안았다.

이렇게 베토벤의 비참한 삶과 그의 위대한 작품은 둘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위대한 일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도저히 뭔가를 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가장 찬란하고 가장 위대한 것이 탄생했다.

베토벤의 삶은 어떤 괴로움과 고통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위대한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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